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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국사
등록일 2015. 12. 17
불국사



  • [지정번호] 사적 제502호
  • [소재지]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15-1)
  • [시대] 통일신라
 

토함산에 서남쪽에 자리 잡은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과학과 미학이 이뤄낸 통일신라 문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삼국 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높았던 경덕왕 10년(751)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삼국 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높았던 경덕왕 10년(751)은 신라 문화의 황금기였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며 당시 신라인들은 신라가 곧 불국토 라는 강한 자부심과 신앙심으로 부처님의 영원한 궁전, 불국사를 건축하여 불국토의 염원과 이상을 조화와 균형으로 현실화 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건너며 천년 고찰 불국사 대웅전에 들어서면 현실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천년 세월이 두 손을 모으게 하며, 비바람에 깎인 돌과 함께 탑을 떠나지 않는 백제의 석공 아사달이 지지 않는 천년의 연꽃과 함께 반겨준다.
경내는 세 분의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영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영역은 입구가 되는 계단과 문, 그리고 중심 건물과 이를 둘러싼 회랑으로 구성되었다. 대웅전 영역은 석가여래불의 사바세계, 극락전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를 나타낸다.  
 
연꽃처럼 피어난 사찰 불국사는 신라의 건축기술과 불교, 토함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만들어낸 통일신라시대 사원 예술의 걸작이다.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과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의 설법 모습을 형상화한 석가탑으로 ‘법화경’의 의미를 구현하는 두 탑과 비로전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극락전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하며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천왕문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서 있는 4명의 사천왕은 원래 부처님이 살고 있는 수미산의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신으로 수미산에 오르는 사악한 마귀들을 잡기 위해 이처럼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근엄하게 서 있는 것이다.

사천왕이 들고 있는 물건은 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검을 든 지국천왕은 동쪽을, 비파를 든 광목천왕은 서쪽, 용을 든 증장천왕은 남쪽, 탑을 든 다문천왕은 북쪽을 지키며 든든하게 부처님의 나라를 수호하고 있다.


청운교 및 백운교

불국사를 눈앞에 두고 앞쪽에 보이는 이층 계단의 아래쪽이 청운교, 위쪽은 백운교이다. 청운교, 백운교 끝에 있는 자하문으로 들어서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청운교는 17단, 백운교는 16단, 총 33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불교에서 상징하는 마지막 서른세 번째 하늘을 도리천이라고 하며,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 정상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뜻한다.

 

다보탑

국보 제20호 다보탑은 다른 탑들과는 다르게 복잡한 형태에 화려한 멋을 보여주고 있다. 다보탑이 이처럼 화려한 모습을 하게 된 이유는 다보탑이 `다보`부처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보탑은 다보 부처님처럼 반짝이는 보석을 걸치듯 화려한 모습이 된 것이며 기묘하면서도 우아한 양식은 신라 장인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예술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통일신라 조형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삼층석탑 (석가탑)

대웅전 서쪽에 위치한 석가탑은 신라 석탑의 완성형으로 불리며, 조화로운 비례와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으로, 탑이 곧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보 제21호인 석가탑은 그 높은 가치만큼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두 차례나 도굴을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탑 일부가 기울어지게 되었고 이를 복원하던 중 귀중한 유물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사리장엄구’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966년 10월 국보 제21호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하여 해체하였을 때, 2층 내부에 사리봉안을 위한 공간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국보 제126호로, 발견된 유물은 총 45건 88점이며, 1967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위탁 관리해 오다가 2009년 12월 불교계에 반환되어 서울 종로구의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설전

육중한 맞배지붕집인 무설전은 불국사 건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님들이 설법하던 장소이며 지금은 강당역할을 하는 곳이다.

무설이란 말이 필요 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염화미소’라고 하는데 말과 글이 아닌, 마음을 전달하고 진리에 도달하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무설전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라 한다.

 

관음전

관음전은 불국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관음보살께서 머물고 있다는 산, ‘보타 낙가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마치 높은 산을 상징하듯 계단 역시 가파르게 만들어 이곳을 힘들게 오르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도 어렵다는 뜻도 담겨져 있다. 

관음전의 천수관음 보살은 천개의 손과 눈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천개의 손 중앙엔 각 각 눈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많은 손과 눈이 필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굽어 살피기 위해서이다. 


비로전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신 비로전은 진리와 빛을 상징하시는 분으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내려왔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처님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중 하나로 국보 제26호로 지정되었는데, 꼿꼿한 자세와 육중한 어깨, 양감 있는 가슴과 긴 허리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한, 옷 주름도 무척이나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사리탑

비로전 정면 좌측 전면에 새겨진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돋보이는 탑이 사리탑이다. 네모난 지대석에는 창 모양의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꽃을 조각하였다.

사리탑은 `부도` 또는 `승탑`이라 하는데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으로 사리는 부처님이나 스님을 화장하고 나오는 유골을 말하는 불교용어로, 모양은 둥근 구슬 모양에서 작은 알갱이 모양까지 다양한데, 불교에서 사리는 오랜 시간 동안 수행한 공덕의 산물로 보고 있다.

 

극락전
극락전은 1750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이전 건물은 임진왜란 때 안타깝게 불타버렸는데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진 곳으로 아미타 부처님은 ‘아미타여래’라고도 하는데 여래는 부처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극락전 안에 오른쪽 그림은 ‘반야용선’이라고 하는데, ‘반야용선’은 현실세계에서 극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배이다. 극락전 현판 뒤를 살펴보면 복 돼지 한마리가 몰래 숨어 있는데 TV프로그램 1박2일 팀이 이 돼지를 소개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연화교 및 칠보교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극락전으로 향하는 연화교,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국보 제22호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당간지주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로 불국사 입구 서쪽의 연화교 칠보교 맞은편에 두 쌍이 동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놓여 있으며, 높이는 2.9m 정도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46호로 두 쌍 모두 정상부를 둥글게 처리하고 안쪽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를 시공하였다.

경주 불국사의 대석단  최순우

크고 작은 자연괴석들과 잘 다듬어진 장대석들을 자유롭게 다루면서 장단 맞춰 쌓아 올린 이 석단의 짜임새를 바라보면 안정과 율동, 인공과 자연의 멋진 조화에서 오는 이름 모를 신라의 신비스러운 정서가 숨가쁘도록 내 가슴에 즐거운 방망이질을 해 주는 것이다.
(중략) 토함산의 서쪽 기슭, 높지도 얕지도 않은 터전에 남향해서 동서로 이어진 이 석단의 오른쪽에는 이 절 정계단인 청운교 백운교가 있고 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자하문을 거쳐서 대웅전 앞뜰이 된다. 석단의 왼쪽 계단은 연화교 칠보교, 이 다리 위 층대를 올라가면 안양문을 거쳐서 극락전 앞뜰이다.

이 안양문과 자하문 사이에는 범영루가 우뚝 솟아 있어서 이 누마루 아래를 통해서 안양문에서 청운교 다리 밑을 거쳐 가는 꿈길 같은 보랑(步廊)이 이어져 있고 불보살들이 옥보를 옮기며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만들어진 청운교 백운교의 중앙 계단에 서서 단상을 우러르면 자하문과 범영루 사이로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랏빛 아침 햇살을 받는다.

조용한 시간을 틈타서 이 뜰을 거닐 때면 언제나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손에 안 잡히는 나의 그리운 사람은 차라리 보살부처이기나 했으면 좋겠거니 생각하노라면 나는 금새 눈시울이 더워 오곤 했다.

경주 불국사의 이 대석단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범영루 발밑에 쌓인 자연석 돌각담이었다. 우람스럽게도 큰 기둥이 의좋게 짜여서 이 세상 태초의 숨소리들과 하모니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이 세계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누가 원형 그대로의 지지리도 못생긴(잘생긴) 돌들을 이렇게도 멋지게 다루고 쌓을 수 있었을 것인가 (중략)

가을 봄 산색이 바뀌고 또 광선이 바뀌고 녹음졌던 절 숲, 고림 나뭇가지에 초롱초롱 달빛이 반짝이는 정월 대보름날 밤이면 아마 옛날 신라의 숱한 아가씨들은 떼지어 탑돌이를 하며 무슨 소원을 부처님께 빌었을 것이다. 소원이 있는 사람이면 마음이 외로울 때 이 뜰이 조용한 틈을 타서 이 석단 앞에서 석단의 크고 작은 돌들을 바라보고 그리고 범영루 너머로 석가탑을 바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새벽이면 새벽대로 달밤이면 달밤대로 석가탑의 위 토막의 희망처럼 은은하게 멀게 가깝게 눈과 마음을 적셔주는 것이다.


-《최순우전집》 2권, 학고재, 1992 

혜곡 최순우는 개성에서 태어나 개성부립박물관, 서울 국립박물관 학예관, 문화재 해외전시관리관, 미술과장, 학예연구실장,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문화재위원,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대표,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을 지냈으며, 서울대, 고려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였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순우 전집1~5》(학고재, 1992)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학고재, 1994)가 있다.

 

경주 불국사기행  현진건

뒤로 토함산을 등지고 왼편으로 울창한 송림을 끌며 앞으로 광활한 평야를 내다보는 절의 위치부터 풍수장이 아닌 나의 눈에도 벌써 범상치 아니 했다. 더구나 돌 층층대를 쳐다볼 때 그 굉장한 규모와 섬세한 솜씨에 눈이 어렸다. 초창 당시엔 낭떠러지로 있던 곳을 돌로 쌓아올리고 그리고 이 돌 층층대를 지었음이리라. 동쪽과 서쪽으로 갈리어 위 아래로 각각 둘씩이니 전부는 네 개 인데 한 개의 층층대가 대개 열일곱, 여덟 계단이요, 길이는 57,8척으로 양가에 놓인 것과 가운데 뻗힌 놈은 돌 한 개로 되었으니 얼마나 끔찍한 인력을 들인 것인가를 짐작할 것이요, 오늘날 돌로 지은 대건축물에도 이렇듯이 대패로 민 듯한 돌은 못 보았다 하면 얼마나 그 때 사람이 돌을 곱게 다루었는가를 깨달을 것이다. 돌 층층대의 이름은, 동쪽 아래의 것은 청운교, 위의 것은 백운교요, 서쪽 아래의 것은 연화교, 위의 것은 칠보교라 한다. 층층대라 하였지만 아래와 위가 연락되는 곳마다 요새 말로 네모난 발코니가 되고 그 밑은 아아치가 되었는데 인도자의 설명을 들으면 옛날에는 오늘날의 잔디밭 자리에 깊은 연못을 팠고, 아아치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며 그림배畵船가 드나들었다 하니 돌 층층대를 다리라 한 옛 이름의 유래를 터득 할 것이다.

층층대 상하에는 손잡이 돌이 우뚝우뚝 서고 쇠사슬인지 은사슬인지 둘러꿴 흔적이 아직도 남았다. 귀인이 이 절을 찾을 때엔 저 편 못가에 내려 그림배를 타고 들어와 다시 보교를 타고 이 돌 층층대를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단다. 너른 못에 연꽃이 만발한데 다리 밑으로 돌아드는 맑은 흐름엔 으리으리한 누각과 석불의 그림자가 용의 모양을 그리고 그 위로 소리 없이 떠나가는 그림배! 나는 당년의 광경을 머리 속에 그리며 스스로 황홀하였다.

이 돌 층층대를 거치어 문루를 지나서니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눈앞에 나타난다. (중략)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미인盛裝美人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미인淡裝美人이라 할까. 이 탑의 별명은 무영탑無影塔, 곧 그림자가 없다는 것으로 여기는 사랑과 예술에 얽힌 눈물겨운 로맨스가 숨어있다. 그때의 사람이 얼마나 종교와 예술에 몸을 바치었고 또는 사랑과 예술을 한덩어리로 만든 황홀경에서 살았다는 것이 아름답고 슬프고 신비로운 이 전설에 풍겨 있다.

발췌 : 《한국의명문》, 대중서관, 1981 


소설가 빙허 현진건은 월탄 박종화의 표현에 의하면, “한국문학사상 사실주의 개척으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비상한 기교의 천재’이며, 김동인과 함께 선명한 묘사 정확한 표현과 구성으로 우리나라 근대 단편소설을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현진건은 도쿄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개벽>에 작품을 발표한 뒤, 이상화, 박종화, 박영희와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였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빈처》,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이 있다.
‘경주 불국사기행’은 현진건이 동아일보 기자 시절 신문에 발표한 기행문이며, 그는 1935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구금되어 1년간 복역 한 뒤, 일제의 압력과 감시에 양계로 소일하다가 1941년 죽었다.


석가탑 출토 사리기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는 보상당초무늬가 투각된 전각형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그 안의 금동제, 은제, 향목제의 각종 사리병이 있었고, 여러 스님이 바친 향과 동경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두루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석탑 해설도

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탑의 층수를 셀 때는 상륜부와 기단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인 탑신부 즉 몸체 부분만 센다. 이층 기단의 삼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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