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풍물소개

  1. 주변풍물소개
  2. 지지호텔
  3. 처음화면
주변풍물소개
제목 분황사
등록일 2015. 12. 17
분황사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3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 하고 있는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되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간 절이다. 
643년에 자장이 당나라에서 대장경의 일부와 불전을 장식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귀국하자 선덕여왕은 그를 분황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 원효는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또 원효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나지는 원효의 소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좌전 북쪽 벽에 있었던 천수대비 그림은 영험이 있기로 유명했다.
경덕왕 때 희명의 다섯 살 난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아이를 안고 천수대비 앞에 가서 `도천수대비가`를 가르쳐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빌게 하였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분황사는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또 앞마당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전석탑이 있어 경주시내 답사에서 빠지지 않고 찾게 되는 곳이다. 원효대사는 한국 불교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잠든 어느 날 저녁 목이 말라 해골에 든 물을 마신 것을 계기로 모든 진리는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후 신라로 돌아온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낳기도 하였으며 시대의 위대한 설법가요 이론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를 대중화시켰다는 것과 교조적인 해석으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의 통합을 위한 이론인 화쟁사상을 제시한 데에 있다고 하겠다. 

원효를 기리기 위해 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우물가에 받침대만 남아 있다.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찾아서 ‘차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새겨놓았으니 찾아보도록 하자. 벽돌을 쌓아 만든 모전석탑은 3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이라 추정되며 1층에는 각 방향으로 문을 만들고 안으로 감실을 만들어 놓았다. 감실을 지키고 있는 인왕상은 모두 모양이 다른데 7세기경 신라 조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석탑을 지키며 당당하게 서 있는 돌사자도 세월의 흔적은 피하지 못했지만, 그 생김새는 여전히 당당하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가 있었다고 하며, 경덕왕 14년(755)에는 무게가 30만6,700근이나 되는 약사여래입상을 만들어서 이 절에 봉양하였다고 한다. 

역사가 오랜 분황사에는 허다한 유물이 있었을 터이나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모두 유실되었고, 지금은 분황사에 둘러놓은 어른 키 만한 담장 위로 석탑의 윗부분만이 보이는 자그마한 절이 되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석탑과 화쟁국사비편, 삼룡변어정이라는 우물들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편에 쌓여 있다. 1965년 분황사 뒷담 북쪽으로 30여 미터 떨어진 우물 속에서 출토된 불상들이 경주박물관 뜰에 늘어서 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1 경주 동궁과 월지(舊 임해전지, 안압지) 관리자 2015/12/17
10 경주 감은사지 관리자 2015/12/17
9 경주 문무대왕릉 관리자 2015/12/17
8 포석정 관리자 2015/12/17
7 분황사 관리자 2015/12/17
6 국립경주박물관 관리자 2015/12/17
5 첨성대 관리자 2015/12/17
4 천마총 관리자 2015/12/17
3 김유신장군묘 관리자 2015/12/17
2 석굴암 관리자 2015/12/17
1 불국사 관리자 2015/12/17
1